[허반장 이야기]/味와 美 그리고 樂

찬란한 로마문명의 중심 '포로 로마노'

허반장 2012. 4. 23. 23:05

로마에 가면 갈곳이 무척이나 많다

그러나 판테온과 콜로세움 카타콤베를 보지 못하고 바티칸을 지나쳐버려도 포로 로마노에 갈수 있다면 로마를 본것이라고들 말한다

고대 로마는 현대의 기준제하기 위해 고대 도시에서는 엄청난 일이었다으로 보아도 무척이나 큰 도시이다 산업혁명 이전까지 유럽의 그 어떤 도시도 로마만큼 크지 않았으며 그리하여 여

느 도시와는 다른 조직이 필요하였고 고밀도의 집합 주거지가 있었으며 외곽으로의 도시 확대가 일어났다 그로인해 많은 사람들을 함께 살게 하기 위한 다양한 법률과 제도가 뒤따랐다

로마 건국의 아버지 로물루스가 만든 이 도시는 바다로부터 24km 떨어진 떼베레 강 기슭에서 시작되었다. 공화정 당시 로마는 쑤부라, 에스뀔라나, 까엘리나, 빨라띠나의 네 지역으로 나뉘

었고, 까삐똘리나는 중심 구역이므로 워싱턴 시처럼 조직에서 제외되었다.

포로 로마노는 바로 이들 한가운데 있는 고대 로마의 중심 공간이었다.

 

처음 포로 로마노에 들어설때는 당황하였으나 페허의 윤곽을 알게 되면서 빠져들기 시작했다. 여태까지 내가 알고 있던 로마에 대한 어떤 책들보다 페허의 모습이 큰 느낌을 주었다

로마에 갈떄마다 고대 로마와 옛 경주의 모습이 비슷하다는 것을 느낀다. 로마의 일곱 언덕과 경주의 다섯 산, 떼베레 강과 형산상, 지중해와 동해가 하나로 느껴진다. 둘다 1000년을 지속

한 도시였다

 

기본적 사회단위로서 로마의 가족은 구성원간에 강력한 연대감과 책임감을 가지며 가부장의 권위는 절대적이었다. 그들은 공동의 일에도 민감했으나 그리스의 민주적 전통과는 반대로 위

에서 아래도 전달되는 형식이었다. 로마인들은 섬세함보다 지속적인 힘을, 아름다움보다는 육중함을, 상상보다는 사실을 중시하였다. 로마인은 감상에 적지 않는 사물의 창조자로서 현실

에 뿌리내린 사람들이었고, 포로 로마노는 그런 로마인의 특징이 그대로 나타난 도시공간이다.

아크로폴리스 언덕과 포로 로마노의 도시 궁성과 건축미학의 다름 속에 그리스 문명과 로마 문명의 다름이 있다.

 

포로 로마노는 최초의 황제 아우구스투스 때 기본이 완성되었는데 당시 로마의 인구는 대략 100만이었다. 급속한 도시집중에 따른 도시 하부구조를 감당하기 휘애 아우구스투스는 로마를

포로 로마노를 포함해서 14구역으로 나누었다. 로마의 유적과 당시의 기록을 통해 천년도시 로마를 더듬는 일은, 옛 도시 위에 신도시가 세워진 로마의 다른 지역에서는 포로 로마노에 오

면 모든 것이 현실의 공간으로 남아 있다